추억 읽기

첫 단편 소설? <팔짱 낀 소녀>

영혼의환 2010. 4. 22. 19:55

중학교 시절, 교우지에 낼려고 심사받은 작품이야.
뭐...
결과는 낙방이었지만...
(당연한 결과다. 귀신과 인간의 사랑이라...)

지금에야 당연한 낙방이라 여기지만 당시엔 꽤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특히 담당 선생이 내 소설 뭉치를 집어던지며 이건 소설도 아니라고 했을 땐...
옆에 담임 선생님만 안 계셨어도 진짜 사고쳤다. (-_-;)


본래 어디선가 본 단편 만화를 모티브로 하는...
(그나마 그 만화는 공포만화였다.(-_-;)

일종의 패러디를 가장한 표절이었다.


어째든 처음으로 썼던 추리 소설이 아닌 글이었다.

아... 손발이 오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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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부? 글쎄...”
나의 물음에 재진이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난 이런 여름에 뛰어다니는건 별로...”
그가 헤헤 웃으면서 나를 바라본다.
“누군 좋아서 할려고 하니? 우리 같이하자.”
내가 포기하지 않고 자기에게 매달리자 성격이 다른 사람 말을 쉽게 거절 하지 못하는 재진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인석아, 실은 내가 태민이하고 영어독해부에 들기로해서 말이야...”
“냐, 넌 영어도 잘하는 녀석이 무슨 영어독해부야. 너희 집에서 쓰는 사람도 없는데 선물로 들어와 늘 창고 한켠에서 잠자는 그 불쌍한 테니스 라켓을 생각해봐라. 넌 그 라켓이 불쌍하지도 않냐?”
“그게...”
“부탁한다. 애들 모두 친구들하고 가입하는데 나 혼자 뽈뽈댈 수는 없잖아.”
내가 이젠 애걸조로 나가자 재진이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태민이한테는 네가 말해야 해!”
내가 웃으면서 걱정말라고 소리쳤다.

재진이와 테니스부 회비를 내고 오는 길에 우리는 태민이와 마주쳤다. 대뜸 우리와 마주친 태민이는 나를 보고 말했다.
“인석아, 우리 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재진이 빼 가니까 기분 좋냐?”
그의 말에서 악의를 느낄 순 없었지만 내가 재진이를 데리고 간 것에 대해서 꽤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하, 미안. 너도 테니스부나 들지 그랬어?”
“그게 가능한 소리냐? 엄마한테 그런 소리하면 맞아죽어...”
“너도 참 불쌍한 인생이다...”
재진이가 태민이의 어깨를 쳤다.
함께 걷기 시작한 우리는 건물 3층의 한 어두침침한 교실 앞에 다달았다.
“늘 느끼는 건데 이 교실은 왜 언제나 문이 잠겨있지?”
내가 꼭꼭 잠긴 녹슨 자물쇠를 툭툭 건드리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거? 나도 우리 학교 들어오기 전에 이 학교 졸업한 옆집 형에게 들었는데, 거기 귀신이 나온 다던데?”
“귀신?”
태민이의 한마디에 내가 놀라서 소리쳤다.
“그래, 귀신. 거, 우리 입학하기 2년 전에 여기가 여학생용 교실이었다더라. 여기서 어떤 여학생이 창문 유리가 허리쪽으로 떨어지면서 그대로 파편에 찔렸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끝내는 수술로 하반신을 잘라냈다고 하더라구. 그리곤...... 야, 솔직히 상반신만 가지고 살기가 쉽냐? 어느날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고 나서 학교를 찾아와선 이 교실 창에서 떨어져 자살했대. 그 이후로는 밤이면 밤마다 그 귀신이 나타나서 이 교실을 휘저어 다니는데... 학교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교실을 쓰지 않기로 했대.”
“왠지 으스스하다.”
그때 오늘의 마지막 시간인 6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우리는 허둥지둥 교실을 향해 뛰어갔다.
덜그럭 덜그럭.
허둥지둥 뛰는 우리 뒤로 마치 의자가 흔들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서 뒤를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아무런 사람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교실을 향해 뛰었다. 그때 나는 그 소리가 누군가가 그 ‘불길한 교실’의 문을 굳게 잠그고 있는 녹슨 자물쇠를 매만지는 소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구름 한점 없이 너무 맑은 날 테니스부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직 초여름이었지만 구름 한점 없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학교 테니스장은 모인 아이들로 하여금 무기력함을 선사했다.
“선생님. 이거 너무 더운데 좀 쉬었다하면 안돼요?”
재진이가 나무 그늘에서 느긋하게 열댓명의 아이들이 연습하는걸 지켜보는 체육 선생님께 다가가서 말했다.
“그럴까? 야, 야. 10분간 휴식이다!”
체육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잠깐의 휴식을 가지게 된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그늘을 찾아서 코트를 누비고 다녔다. 나와 재진이는 우리 학교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오래된 느티나무 그늘에 앉았다. 느티나무는 테니스장 밖에 있지만 서쪽으로 기울어진 해 덕분에 세사람 정도 앉을 수 있는 그늘이 테니스장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늘 아래에 털썩 주저앉아 두 다리 쭉 뻗고 뒤쪽 철조망에 등을 붙이고 있자니 재진이가 내 다리를 베고 그 자리에 벌렁 누워버렸다.
“인석아, 물있냐?”
재진이가 멀뚱히 나뭇잎에 조금 가린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물었다.
“물? 아까 다 마셨는데?”
내가 빈 물통을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나쁜 놈, 나도 좀 주지...”
재진이가 악의 없이 한마디 툭 내뱉고는 고개를 조금 돌려 학교를 바라보았다. 나는 잠시 명상의 시간이나 가질까 해서 두 눈을 감고 머리도 철조망에 기대곤 편안하게 명상에 빠졌다.
아니, 명상이라기보다는 몽상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하다. 몽상 속에서 나는 테니스 천재가 되어 세계의 유명한 선수들을 격파하고 최장기간 테니스 랭킹 1위라는 기록을 세우고 한 예쁜 여자와 결혼하기위해 식장에서 그 여자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는데 재진이가 나를 불렀다.
“야, 넌 친구 결혼하는게 그렇게 아니꼽냐?”
몽상이라지만 행복한 순간에 몽상을 깨트린 재진이를 향해 내가 투덜거렸다.
“무슨 소리야, 결혼이라니? 너 또 꿈꿨냐?”
“그게 아니라...”
“야, 어째든... 저기 3층 창문에 봐라. 보이냐?”
재진이가 손가락으로 팔짱낀 팔로 창문틀에 기대어 있는 3층의 한 여학생을 가리켰다.
“저기 여학생?”
“그래.”
재진이가 손으로 OK표시를 해 보였다.
“아까부터 저 애, 널 보고 있었어.”
“날? 에이, 설마....... 그냥 우리 테니스부를 보는 거겠지......”
내가 웃어넘기려고 하하하 웃었지만 재진이는 손을 내저었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서 날 보고는 말했다.
“내가 맹세코 저 애는 분명 널 보고 있는 거야. 쉬는 시간 7분 흘러가는 동안 너한테서 눈길을 뗀 적이 없어. 확실해.”
“정말?”
내가 그래도 의심스러워 재진이에게 다시 묻자 재진이는 열 받은 듯이,
“너 사람 말 정말 안 믿는다! 그래, 내가 찍는다, 찍어!”
하며 엄지손가락을 이마에 가져다 대면서 화를 냈다.
“그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팔짱을 낀 그 여학생을 다시 한번 모려고 고개를 들었지만 체육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다시 연습을 시작하라고 하는 통에 그 소녀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라켓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정인석. 저 여자애 오늘도 널 보고 있어.”
재진이가 내 쪽으로 굴러오는 볼을 주으러 오는 척 하면서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그의 말에 올려다본 3층에는 어제처럼 그 여자애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니스장과 학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표정을 슬쩍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아주 잔잔한 미소를 띠며 날 보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매우 아름다웠다. 체육선생님이 열심히 연습하라고 호통치는 바람에 겨우 몇 초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평범한 얼굴의 보통 소녀같았지만 미소만큼은 누구든지 빨아들일 듯 했다. 그녀를 머릿속에 떠올리자 저절로 내 입술이 헤, 하고 벌어지면서 바보같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으니까 참다 못한 체육선생님이 내 머리를 향해 서브를 날렸고 난 공에 머리를 맞고는 비틀대는 와중에도 그녀를 보며 헤, 하고 웃었다. 그녀 또한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테니스부를 시작한지 2주째. 내가 요즘 자주 듣는 이야기는
“인석이 너 무슨 좋은 일 있냐? 왜 맨날 실실 웃고 다니냐?” 와
“너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 이다.
정말로 그 팔짱낀 소녀를 본 이후로 내 삶이 달라졌다. 그녀는 지금까지 늘 방과 후면 같은 자리에서 엷은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하루도 거른 적이 없이 연습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참 복 많은 놈이다.”
재진이가 테니스장에 들어서면 늘 창가의 소녀가 있는지를 바라보는 나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그럼 나는 대답대신에 씩 웃었다. 물론 그녀를 안 것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 단적인 예로 부쩍 멍하니 있는 시간이 전보다 늘어난 것이다. 평소에도 몽상이 많아 공부에 지장이 되는 일이 많았는데 이젠 그녀를 생각하느라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있기 일쑤였다. 집에 와서도 늘 그녀만 생각했다.
“정인석!”
수업이 끝나고 멍하니 앉아있는 나에게 태민이가 다가와서는 나의 어깨를 툭 쳤다.
“또 몽상이냐? 지겹지도 않냐?”
그가 내 앞자리에 앉아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씩 웃었다.
“너 요즘 여자 사귄다며? 재진이한테 다 들었다.”
태민이는 책상위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괴면서 물었다.
“사귀는건 아니고......”
“누군지는 알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그 아이도 날 모를 텐데 꼭 알아야 될 이유는 없잖아......”
태민이는 나의 대답에 흠 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매점이나 가자. 맛있는거 사줄게.”
그가 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난 그가 사준다는 말에 쫄래쫄래 그를 따라 나섰다. 우리 교실에서 매점으로 가려면 여학생 교실이 모인 복도-우리는 이곳을 꽃밭이라 부른다. -를 지나야했다. 그 복도를 지날 때 태민이는 그 여학생 같아 보이는 학생을 찾아보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지만 시선은 어느새 그 아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테니스부의 수업기한도 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체육선생님은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자율적으로 경기를 하라고 지시하고는 교무실로 총총걸음으로 뛰어갔다. 이날도 어김없이 그 소녀는 그 자리에서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서 나는 손을 흔들었다.
“넌 정말 복 많은 놈이다. 저애 오늘도 널 보고 있어.”
재진이가 테니스라켓을 어깨위에 대고 통통 튀기면서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래봐야 내 이름이나 반도 모를 건데 뭐...... 테니스부 수업이 모레 끝나면 이 생활도 끝일 건데......”
내가 라켓의 이음새 부분을 매만지며 말했다.
“야, 그럼 이 생활 끝나기 전에 멋진 모습 하나 보여줘라. 저기 대명이하고 영준이가 2:2로 음료내기 게임하자고 한다.”
재진이가 정신차리라는 뜻인지 내 머릴 라켓의 망으로 내 머리를 탁 내리쳤다.
“그럴까? 좋아!”
내가 재진이의 라켓을 내 라켓으로 탁 쳐내고는 코트에서 구르는 볼을 잡았다.
“어이, 문대명! 시작하자!”
재진이가 코트 구석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대명이와 영준이를 불었다. 그녀가 날 바라보며 우리의 승리를 빌었는지 우리보다 갑절은 잘하는 대명이와 영준이를 우리는 멋지게 참패를 안겨주었다.

드디어...... 테니스 수업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비록 초여름 답지않게 비 한번 내리지 않고 무덥기만한 날씨였지만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 생겼다는 것이 그 날씨도 날려버렸다. 그건 모두 그 소녀가 늘 그 자리에서 날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늘 3층 창가에서 팔짱을 낀 채로 날 지켜보던 그녀가 그곳에 없었다. 늘 지켜보다 무슨 일로 마지막 날은 나를 바라보지 않응 것인가? 낙심한 나는 모자를 푹 눌러써서 학교를 바라보지 않으려 했다. 재진이가 나를 흘끗 쳐다보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학교를 바라보았다.
“웬일이냐, 그 애가 널 보지 않고......”
난 대답대신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재진이는 그런 내가 한심해 보이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야, 야. 저기......”
재진이가 돌연 나를 흔들며 우리가 있는 곳의 반대편 철조망을 가리켰다. 거기는 그 소녀가 허리까지 오는 시멘트벽에 팔짱을 끼고 기대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물론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재진이는 이상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인석아, 이건 신이 너에게 준 기회다. 가서 말이나 걸어봐.”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그럼 오늘 이 수업 끝나면......”
하고 대답하자 재진이는 내 모자를 벗겨 머리를 쓰다듬으며
“짜식! 꼴에 수줍어하기는......”
하며 하하하 웃었다.
“야! 거기 두 사람! 왜 떠드는 거야! 여기 와서 엎드려뻗쳐!”
재진이의 오버액션 덕분에 나와 재진이는 체육선생님께 끌려가 땡볕에 한 시간 동안이나 ‘엎드려뻗쳐’자세로 있어야만 했다. 나는 그녀가 이런 모습은 보지 않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늘 그랬듯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망신이람......”
내가 땅을 보고 중얼거렸다.

“임마, 돌아볼 것 없어. 벌써 갔을 거라구.”
재진이가 계속해서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나를 향해 말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내가 재진이에게 소리쳤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엎드려뻗쳐’를 하는 사이에 떠난 것일 것이다.
“그게 왜 내 탓이냐? 이건 모두 너의 그 덜 성숙한 사랑 탓이야. 아~ 가련한 인석이의 첫사랑이여...... 가자 임마. 내가 맛있는거 사줄게.”
재진이는 내가 화를 냈지만 덩달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어주었다. 아마도 내 기분을 이해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재진이에게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곤 마지막으로 뒤돌아 보았자. 역시 그녀는 없었다. 그러나 학교를 보았을 때 그곳엔 늘 그녀가 있었다!
“어...... 저기 저 애 널 기다렸나봐.”
재진이가 뜻밖이라는 듯이 말했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고
“재진아, 나 저애한테 갔다 갈게. 너 먼저가라.”
라고 말하며 학교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화이팅 정인석!”
재진이가 뒤에서 소리쳤다.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지? 그 애는 전부터 날 알고 있었나?
3층까지 뛰어가는 동안 내 머리는 온통 그녀 생각이었다.
그녀가 있는 3층 교실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 교실은 전에 태민이가 말해준 ‘불길한 방’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거기는 내 생각대로 그녀가 있었다. 비가 내릴 듯이 구림이 껴서 교실이 조금 어두웠다. -이건 단지 내 생각일 뿐 그 교실은 그 자살이 있은 후 늘 어두웠다.- 그녀는 문소리에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음, 아 저는 저기 정인석이라고 하는데...... 안...... 안녕하세요? 하하하......”
내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저기......”
내가 다시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할 때 그녀가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눈도 어둠에 완전히 적응되었다.
“전...... 걸을 수 없어요.......”
그녀가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잘못 본 것이기를 바랬다.
그녀는...... 다리가 없이 상체만이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태민이가 말했던 그 자살한 여자 선배......
“너무 놀라지 말아요.”
그녀가 평소처럼 미소를 지었다. 나도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받은 충격이 큰 것 같았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기고는 어느새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살지고도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머릿속은 나무 생각이 없이 그저 멍하니 그녀가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내가 놀란 건 단지 그녀가 그런 모습이기 때문일 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조금 놀랐을 뿐 나는 단지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뿐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