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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朝鮮Proleta藝術家同盟)

영혼의환 2010. 4. 25. 00:28

  • ※1925~35년에 활동했던 진보적 문학예술운동단체.
  •   약칭은 카프(KAPF :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로 이는 에스페란토어에서 따온 것이다. 3․1운동 이후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을 민족해방운동의 본 문인들이 문학도 프롤레타리아 해방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조직된 문예운동단체이며 소련의 라프(RAPP), 중국의 중국좌익작가연맹(左聯), 일본의 나프(NAPF)와 뜻을 함께하는 단체이다.


    1. 성립과정

    1921~22년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 민중문예․생활문예 등의 필요성과 러시아의 새로운 문학론을 소개하는 글이 많이 발표되었는데, 이 글들은 이전의 낭만적․퇴폐적 문학에 대한 비판과 문학의 계급성에 대한 소박한 인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1922년 9월경에 조직된 염군사(焰群社)에 의해 조직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염군사는 '무산계급 해방문화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함'을 강령으로 내세웠고, 중심인물로 당시 사회주의 정치운동에 깊이 관여하던 이호․김두수 외에도 이적효․송영․최승일․박용대․김영팔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염군사는 진보적 사회운동에 뿌리를 둔 소규모적․초보적인 단체로서 미발간 잡지 〈염군〉을 제2호까지 편집한 것 외에는 뚜렷한 활동이 없었다. 1923년 문학의 계급성을 인식하게 된 중견 문인들은 염군사의 조직과 사회주의운동에 영향을 받아 파스큘라(PASKYULA)라는 새로운 단체를 조직했는데, 이 단체의 중심인물로 김기진․ 박영희․김복진․이상화․김형원․이익상 등이 참여했고 '인생을 위한 예술, 현실과 싸우는 의지의 예술'이라는 취지를 내세웠다. 이 두 단체에 참가한 문인들과 이와 비슷한 경향의 작품활동을 하던 이기영․조명희․한설야․최서해 등은 당시 사회주의 운동계의 조직 통합을 계기로하여 1925년 8월경 카프를 결성하게 된다.


    2. 활동

    카프는 "우리는 단결로서 여명기에 있는 무산계급 문화의 수립을 기함"이라는 강령을 내세웠으나 이는 염군사의 강령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초기에는 단지 두 단체의 통합이 이루어졌을 뿐 문예운동단체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은 펴지 못하고 임시총회를 열거나 준(準)기관지 〈문예운동〉을 발행하는 정도였다. 이 시기에는 구체적인 작품보다는 문예운동의 이념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중심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김기진과 박영희가 벌인 '내용형식논쟁'은 카프조직 내의 최초의 논쟁이다. 그외 〈염군〉에 발표된 몇 편의 작품부터 1927년 이전까지 발표된 작품을 '신경향파 문학'이라 하는데, 김기진․박영희․이상화․김창술․박팔양 등의 시, 최서해․조명희 등의 소설, 김영팔․김우진 등의 희곡이 여기에 속한다. 1920년대 중반까지 여러 단체로 분리되어 있던 사회주의운동단체는 1926년 11월 '정우회선언'을 기점으로 방향전환론이 전개되고 문예운동에서도 1927년초 방향전환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1927년 9월 총회에서 "우리는 무산계급운동의 일부분인 무산계급 예술운동으로써 봉건적 및 자본주의적 관념의 철저한 배격, 전제적 세력과의 항쟁, 의식적 조성운동의 수행을 기한다"라는 새로운 강령을 채택했는데, 이는 과거의 막연한 민중주의로부터 벗어나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중앙위원회 아래 서무부․조직부․교양부․출판부․조사부 등을 두는 조직을 결성하고, 김복진․박영희․조명희․한설야․최서해․윤기정․이북만․조중곤․한식․홍효민 등을 중앙위원으로 선출했다. 이와 같은 조직편성은 예술조직의 특수성보다 정치조직의 성격을 뚜렷이 드러내며 예술에 관심 없는 청년들도 대다수 가입시켜 정치적 대중조직으로 만들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서울에 있는 본부 외에 도쿄[東京]․개성․수원․해주․평양․간도․임실․남원 등에 지부를 두었는데 이러한 조직개편에 의견이 분분했다. 당시 핵심 지도자인 박영희는 "조직과 예술을 일원론적으로 통일시켜 예술가의 운동단체로 건설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도쿄에서 활동하던 '제3전선파'에 의해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즉 홍효민․한식․이북만 등의 소장파 문인들은 박영희의 주장은 사회주의운동 전과정에 대한 몰이해와 예술 전체가 아닌 문학영역에만 한정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박영희는 회의를 느껴 1933년 카프를 탈퇴했다.

    1927년 목적의식적 방향전환을 겪으면서 카프에 주어진 과제는 문학운동의 구체적 실천이었으며, 이는 문학운동의 민중연대성과 창작방법에 대한 문제로 나타났다. 전자는 예술대중화론으로 후자는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론으로 제기되어 문인들간에 논쟁을 벌였다. 방향전환 이후 카프에 의해 전개된 문학을 프롤레타리아 문학(프로 문학)이라 하는데, 이는 신경향파문학을 발전시킨 형태이다. 특히 이 시기에 발표된 조명희의 〈낙동강〉은 학자에 따라 신경향파 문학이나 프로 문학에 포함시키거나 양자의 중간에 두기도 한다. 이어 발표된 이기영의 〈원보〉․〈제지공장촌〉, 송영의 〈석공조합대표〉, 한설야의 〈과도기〉 등의 소설은 농민소설과 노동자소설이 경향문학의 중심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 문학 외에 연극․영화 부문의 활동도 두드러져 극단 '백의극단'과, 영화운동단체 '신흥영화동맹'이 창립되었다. 1929년경부터 사실상 카프의 주도권은 도쿄에서 귀국한 임화․김남천 등의 소장파에게 넘어갔으며, 이들은 김기진의 대중화론에 맞서 문학의 볼셰비키화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큰 성과가 없자 1930년 4월 중앙위원회를 열어 조직개편을 단행했는데, 중앙위원회 아래 서기국․조직부․출판부․교양부 외에 기술부를 두고 기술부 아래 문학․영화․연극․미술․음악 등의 분야별 분과를 두었다. 이는 문학분야에 치중한 활동을 전예술분야로 확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때 중앙위원도 박영희․임화․윤기정․송영․김기진․이기영․한설야․권환․안막․엄흥섭 등으로 교체되었고, 기술부 아래의 문학분야에 권환․송영․엄흥섭․이기영․임화․한설야․박영희 등, 영화분야에 윤기정․김남천․임화 등, 연극분야에 김기진․신석초․안막 등, 미술분야에 강호․정하선․이상대․안석주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맹원들의 활동이 겸임․중복됨에 따라 1931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단체협의회로 개편, 그 아래 조선프로작가동맹․조선프로극장동맹․조선프로영화동맹․조선프로미술가동맹․조선프로음악가동맹과 서기국을 두자는 재조직안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1931년 영화 〈지하촌〉 사건으로 인한 제1차 검거로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자 재조직안은 중지되었다. 이 시기에 카프는 러시아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론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다. 즉 초기의 노동자계급 당파성에 입각한 문학운동은 부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치주의적 편향과 도식성을 드러냈는데, 사회주의적 리얼리즘론을 계기로 문학을 단순한 계급의식의 반영으로만 보지 않고 미적 반영론을 수용하게 되어 문학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조직 내에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러한 전환을 잘 보여준 작품이 발표되었는데, 그것은 이기영의 소설 〈서화〉이다. 카프에 참여한 문인들은 〈서화〉를 평가하면서 과거의 카프를 반성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전환을 준비했고, 이는 이기영의 〈고향〉과 한설야의 〈황혼〉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 시기에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론 외에 농민문학과 프로 문학의 관계를 둘러싼 안함과 백철의 논쟁, 카프조직과 동반자작가의 관계를 둘러싼 동반자문학논쟁이 진행되었다.

    일제는 1930년대 중반 이후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진보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감행해 카프의 연극단체인 신건설(新建設)의 전단을 가진 학생이 전라북도 금산에서 발각된 사건을 계기로 1934년 제2차 검거를 벌였다. 2차 검거는 1차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대대적이었으며 이에 몇몇 카프 맹원들이 맞섰으나 대다수가 검거되어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카프 내에서는 해체에 찬성하는 '해소파'와 반대하는 '비해소파' 간의 심한 대립이 일어났고, 마침내 1935년 5월 주도세력인 임화․김남천이 경기도 경찰국에 해산계를 제출함으로써 10년에 걸친 카프의 활동은 마감되었다. 프로 문학은 일제의 탄압으로 1930년대 후반부터 활동하지 못했고, 이론적 한계를 드러내 동요되었으나, 프로 문학의 계승․발전을 모색하는 노력으로 해방직후 좌익문인들에 의해 다시 제기되었다.


    3. 의의

    10년간 지속된 카프는 비록 여러 면에서 한계를 드러냈으나 한국문학사에서 문학예술의 민중성․계급성․당파성에 역점을 두고 노동자계급 문예의 필연성을 선포했으며, 변혁운동에의 의식적 복무를 선언하고 수행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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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염군사 (焰群社)

  • 1922년 9월 이적효․이호․김홍파․최승일․김두수․김영팔․심훈․송영 등이 조직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문학단체.

    해방문학의 연구와 운동을 목적으로 한다는 강령을 내세우고 직접 정치활동에 참여했다. 기관지인 〈염군〉을 2호까지 편집했으나 간행하지는 못했다. 창간호에는 이적효의 시 〈지새는 새벽에 어린애 죽었어요〉, 박세영의 〈양자강반에서〉, 2호에는 송영의 희곡 〈백양화〉, 김홍파의 소설 〈어둔 마을〉 등을 실을 예정이었다.


    파스큘라 (PASKYULA)

    1923년경 박영희․안석주․김형원․이익상․김복진․이상화․김기진 등에 의해 조직된 문학단체.

    파스큘라라는 명칭은 그들 이름의 영문표기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이며, 김기진과 박영희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직 시기와 이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된 바가 없다. 1923년말부터 '토월회' 동인인 김복진․김기진․연학년 등과 〈백조〉 동인인 이상화․박영희, 그리고 이익상 등이 모여 '인생을 위한 예술', '현실과 싸우는 의지의 예술'을 지향한다는 목적 아래 대외적인 큰 활동없이 모임을 이끌어갔으며, 이러한 태도는 염군사와 통합할 때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 활동 가운데 확인된 것은 1925년 2월 7일 천도교 기념회관에서 개최한 '문예강연 및 시 각본낭독회' 정도이며, 여기에서 김형원의 〈서적(書籍) 이전과 이후〉, 민우보의 〈저널리즘과 문예〉, 이성해의 〈문예의 시대성〉, 이상화의 〈이별하는 이〉, 박영희의 〈체호프 연구〉 등이 낭독되었다. 비록 파스큘라의 조직적 활동은 미약했으나 이 단체에 참여한 사람들의 개인적 활동은 한국문학사의 새로운 흐름을 잉태시키는 구체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들은 이전의 퇴폐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고 인생을 위한 예술, 무산계급의 예술 등을 주장했으며, 이후 이들의 노력에 의해 신경향파 문학이 자리잡게 되었고 문학과 정치 또는 현실과의 관련 양상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1925년 7월 염군사와 더불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으로 통합되었다.


    新傾向派文學

    한국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등장하기 전에 전개된 문학으로서, 아직 사회주의적 목적의식이 드러나지 않은 문학.

    ‘신경향파'라는 용어는 박영희의 〈신경향파의 문학과 그 문단적 지위〉(개벽, 1925. 12)라는 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배경 및 전개

    신경향파 문학은 3․1운동 이후 널리 퍼지게 된 사회주의 사상으로 인해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민족해방운동을 펼쳐보려는 목적으로 여러 단체를 결성하는 동시에 〈개벽〉․〈신생활〉․〈조선지광〉 등의 잡지를 발행하여 종래의 관념적․퇴폐적인 문학을 버리고 현실을 바탕으로 한 문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경향파 문학비평에서 큰 역할을 한 이론가는 김기진과 박영희이다. 특히 김기진은 1923년 〈개벽〉 7월호에 평론 〈Promeneade Sentimental〉을 발표한 뒤,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개벽, 1923. 9~10)․〈지배계급 교화, 피지배계급 교화〉(개벽, 1924. 1)․〈금일의 문학 명일의 문학〉(개벽, 1924. 2) 등을 발표하여 신경향파 문학의 가장 활동적인 작가로 손꼽혔다. 그리고 박영희는 〈자연주의에서 신이상주의에 기울어지려는 조선문학 최근 경향〉(개벽, 1924. 2)․〈조선을 지내가는 비너스〉(개벽, 1924. 12) 등을 발표하여 기존의 감상적 낭만주의 경향을 비판했으며, 그밖에 홍명희․이상화 등이 문학비평 활동에 참여했다. 이들은 여러 편의 평론을 통해 모든 예술은 '생활' 또는 '현실'의 산물이기 때문에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신경향파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김기진․박영희․최서해․조명희․이기영․송영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김기진은 〈붉은 쥐〉(개벽, 1924. 11)․〈젊은 이상주의자의 사〉(개벽, 1925. 6~7) 등을 발표했고, 박영희는 〈전투〉(개벽, 1925. 11)․〈지옥순례〉(조선지광, 1926. 11) 등을 발표했는데, 두 작가의 소설은 인물이 단순하고 사건이 도식적이며 미래에 대한 전망이 과장적으로 드러난 점이 비슷하다. 불우한 생애를 보낸 최서해는 자신의 체험을 그려낸 〈탈출기〉(조선문단, 1925. 3)․〈기아와 살육〉(조선문단, 1925. 6) 등을 발표했는가 하면, 시로 출발한 조명희는 〈R군에게〉(개벽, 1926. 2)․(낙동강〉(조선지광, 1927. 7) 등을 발표했는데, 특히 〈낙동강〉은 신경향파 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경계선에 놓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밖에 이기영은 〈가난한 사람들〉(개벽, 1925. 5) 등에서 지주의 수탈로 인해 황폐해진 농촌을 그려냈고, 극작가이기도 한 송영은 〈늘어가는 무리〉(개벽, 1925. 7) 등에서 노동세계와 노동현장을 일관되게 그려내 한국 노동소설의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신경향파 소설은 종래의 낭만적․개인적인 문학에서 벗어나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한국 사실주의 소설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으나, 작품에 현실을 총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신경향파 시의 대표적 작가로는 김기진․김형원․김해강․유완희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이 발표한 시 내용을 종합해보면 빈궁과 착취에 시달리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고발하고 사회현실에 대한 증오와 반항의 감정을 노래함으로써 종래의 유미적․퇴폐적인 시 경향을 극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관념을 직접 나타내거나 반항의 의지를 막연하게 드러냄으로써 시적 형상화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의의와 한계

    신경향파 문학은 1920년대초 〈백조〉․〈폐허〉에서 보여주었던 낭만적 감상주의나 퇴폐적 유미주의 경향을 극복하고,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예술적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사실주의 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전환을 가져왔다. 그러나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의 원인을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올바르게 형상화하지 못하고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폭로와 고발에 그친 한계를 지닌다. 그결과 주인공의 행동이 주로 개인적인 복수나 본능적인 반항․살인․방화․자살 등으로 끝나고 있다.


    proletarian literature

    부르주아 계급문학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목적의식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의도하는 문학.

    약칭은 프로 문학. 19세기 중엽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 Manifest der Kommunistischer Partei〉(1848)을 발표하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할 즈음에 성립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자연발생적인 부분을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함으로써 전세계적인 문학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코민테른의 활동이 본격화됨에 따라 전세계에 파급되었으므로 혁명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소련의 라프(RAPP), 프랑스 클라르테(Clarte), 일본의 나프(NAPF) 등이 당시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단체이다. 이중 클라르테는 한국의 프롤레타리아 문학 초기의 주요이론가인 김기진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나프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배경 및 전개

    한국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3․1운동 이후 사회운동의 활성화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1925년 8월 카프의 결성으로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카프는 1926년 준(準)기관지 〈문예운동〉을 펴내면서 사회적 태도를 분명히 했으며, 사회운동 방향전환의 계기가 되었던 정우회 선언이 발표되고 신간회가 결성되자 1927년 9월 1일 총회를 열어 문호개방과 조직확장을 꾀했다. 그와 더불어 제1차 방향전환을 시도했다. 제1차 방향전환은 '목적의식론'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종래의 자연발생적 단계에서 벗어나 목적의식적 문학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등장한 일본 유학생 출신의 제3전선파는 아나키즘계와 논쟁을 벌이는 한편 민족주의파를 축출하고 카프의 주도권을 잡았다. 제3전선파의 중심인물은 조중곤․김두용․이북만․홍효민․한식 등으로, 이들은 과감한 이론투쟁과 대중투쟁을 병행했다.

    1931년을 전후한 제2차 방향전환은 밖으로는 신간회의 해체에 자극받았고, 안으로는 김기진의 대중화론에 대한 소장파의 반대로 비롯되었다. 김기진의 대중화론이 대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맞추려 한다는 점을 비판한 소장파의 견해는 '투쟁하는 계급의식'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런 이유로 제2차 방향전환을 '볼셰비키화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위의 눈으로 세계를 보라'와 '당파성의 문학'으로 요약되는 논리를 전개한 소장파의 중심인물은 안막․임화․김남천․권환 등이다. 그러나 카프는 1931년 제1차, 1934년 제2차 검거사건으로 사실상 활동이 중지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1935년 5월 21일 경기도 경찰부에 해산계를 제출함으로써 해산되고 말았다. 당시 주요 활동 근거지였던 카프의 해산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후 더이상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은 전개되지 못하고 전향논의만 뒤따랐다.

    마르크스주의 문학론을 바탕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민족주의문학파 및 해외문학파와 많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자체 내의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박영희와 김기진 사이의 내용․형식논쟁, 아나키스트와의 논쟁, 목적의식논쟁, 〈낙동강〉(조명희 지음)의 평가를 둘러싼 논쟁, 대중화논쟁, 농민문학논쟁, 물논쟁, 창작방법논쟁 등이 그것이다. 내용․형식논쟁은 박영희의 작품을 둘러싸고 김기진과 박영희․양주동 등이 참가한 논쟁으로 문학에서 내용과 형식은 변증법적인 관계에 놓인다는 원론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무정부주의자와의 논쟁은 목적의식론과 함께 전개되어 무산계급의식을 드높이면서도 예술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무정부주의 쪽의 주장에 대해 문학의 정치성을 앞세운 소장파가 카프의 주도권을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낙동강〉을 둘러싼 논쟁과 물논쟁은 구체적 작품을 대상으로 전개된 논쟁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물논쟁은 조선의 현실을 문제삼아 리얼리즘에 대한 인식을 높인 최초의 논쟁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대중화논쟁은 내용․형식논쟁에 이어지는 것으로 문학의 당파성을 파기한 김기진의 논리 대신 그것의 관철을 주장한 소장파의 견해가 받아들여져 볼셰비키화로 이어졌다. 창작방법논쟁은 볼셰비키화 단계의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 사회주의 리얼리즘 등으로 중심이 변화하면서 계속되었다. 이 논쟁은 리얼리즘에 대한 깊이를 더해주었으나 한편으로는 전향의 빌미로 이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위의 논쟁들은 문학에서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 등 원론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나갔을 뿐만 아니라, 반영론이나 당파성 등의 개념을 이해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보다 높은 수준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여러 논쟁과 더불어 작품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시의 경우 임화․김창술․박아지․박세영 등이 초기의 생경한 구호 차원에서 벗어난 본격적인 프롤레타리아 시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특히 임화는 〈네거리의 순이〉(조선지광, 1929. 1)․〈우리 오빠와 화로〉(조선지광, 1929. 2) 등에서 드러나듯 '단편서사시'라는 형식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시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소설의 경우, 프롤레타리아 문학 초기에 해당하는 신경향파 시기의 작품은 2가지 경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첫째, 현실의 구체적인 분석 대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박영희적 경향이다. 박영희의 〈사냥개〉로 대표되는 이 경향은 현실성이 결여된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추상적인 이상향을 그리는 관념적 성격이 강하다. 둘째, 당시 농촌의 고통받는 현실을 그리되 전망을 획득하지 못하는 최서해적 경향이다. 이기영의 초기 작품과 최서해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이 경향은 현실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해 살육과 방화를 일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두 경향은 〈낙동강〉을 쓴 조명희에 이르러 어느 정도 극복되었으며, 이후 〈민촌〉․〈농부 정도공〉․〈서화〉 등을 쓴 이기영, 〈과도기〉의 한설야, 〈인간문제〉의 강경애 등에 의해 한층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이기영은 〈고향〉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소설의 최고봉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희곡에서도 송영․김영팔 등이 상당수의 작품을 창작했다.

    의의

    1925~35년 한국문단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의의는 첫째, 문학에 과학주의를 도입․확립시켰다는 데 있다. 종래까지의 한국문학은 뚜렷한 문학관이 없었고, 더구나 비평에서는 방법론에 대한 자각이 없었는데,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식민지 현실에 적합했는지의 여부를 떠나 문학의 근대화로서 과학주의를 도입한 것은 커다란 공적임에 틀림없다. 둘째, 대중개념을 도입한 점이다. 카프가 자신의 문학적 성과를 대중에게로 돌리고, 문학과 대중개념을 그토록 접근시키려 한 사실은 중요한 것이다. 셋째, 논쟁의 확립을 들 수 있다. 특히 이들의 논쟁은 하나의 문제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논쟁 때마다 거의 전문인이 동원된 점은 과거의 논쟁이 몇몇 문인들의 감상적․인상적인 평을 늘어놓는 데 그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넷째, 문예시평이란 이름의 작품평에서 민족과 개인과 계급으로서의 총체적인 사회비평을 시도한 점이다. 이것은 문학이 문단 중심이 아니라 사회 중심임을 증명하는 예이다. 이러한 점은 정치적 운동의 길이 막혀버린 식민지 조선의 특수성에 기인된 것이라 보여진다.


    Socialist Realism

    1932년 소련에서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수립된 문학창작의 이론 및 방법.

    1934년 제1회 소비에트 작가회의에서 공식용어로 채택되어 기본 창작방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수년 간의 논쟁을 통해 정의되고 재해석된 나머지 막연하게 사용되었고, 공산주의에 충성하는 많은 작가들도 부지중에 그 원칙을 어기곤 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인생의 충실하고 객관적인 거울이 되려 한다는 점에서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사실주의, 즉 비판적 리얼리즘과 구별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지표는 ① 노동자계급 세계관, ② 예술창작의 철학적 바탕으로서의 변증법적 역사적 유물론, ③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입장에 따른 예술창작의 정신적․이념적 전제로서의 당파성 등이 가치평가 태도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사회를 묘사함에 있어 불완전함을 인정하기는 해도 보다 폭넓은 역사와의 연관을 염두에 두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각을 취해야 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필수적 요건은 온갖 장애와 난관에 맞서 분투하는 적극적․긍정적인 주인공이다. 대중의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인물 및 사건을 고상하고 이상적으로 만들기를 장려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소련 작가들은 수백 명의 긍정적인 주인공들(대개는 기술자․발명가․과학자 등)을 만들어냈는데, 이들은 현실적인 인물 같지 않다는 점에서 놀라우리만큼 한결같다. 때로 작가의 체험이 공식적 주장과 일치할 때는 성공작이 나오기도 한다. 32세에 요절한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가 쓴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Kak zakalyalas stal〉(1932~34)는 대표적인 예이다.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은 10월혁명 때 부상을 당한 뒤 자신의 신체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작가가 되어 재건운동의 노동자들을 고취시킨다는 내용이다. 젊은 작가의 열정적인 진지함과 자전적 체험은 파벨 코르차긴에게 대부분의 소비에트 주인공들이 갖지 못한 통렬한 신념을 부여하고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또한 시각예술에 있어서도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선전적이고 이념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이 경향에 입각한 회화 및 조각 작품들은 적극적이고 용감한 노동자들과 농부들을 자연주의적으로 이상화하여 그렸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20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미학이었으나, 20세기말에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주도한 사회적 변혁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안막의 〈창작방법문제의 재토의를 위하여〉(동아일보, 1933. 11. 29~12. 6)가 발표되면서부터이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찬반논쟁이 전개되면서 한국에서의 적용 문제,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의 관계, 세계관과 창작방법의 관계, 혁명적 로맨티시즘 등을 쟁점으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논쟁에 관한 대표적인 글로는 김남천의 〈창작방법에 있어서의 전환의 문제〉(형상, 1934. 3), 안함광의 〈창작방법문제〉(조선중앙일보, 1934. 6. 17~30), 한효의 〈문학상의 제문제〉(조선중앙일보, 1935. 6. 2~12), 김두용의 〈창작방법의 문제〉(동아일보, 1935. 8. 24~9. 1), 임화의 〈낭만적 정신의 현실적 구조〉(조선일보, 1934. 4. 21~25) 등이 있다.

  • -------------------참고문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한국프롤레타리아문학연구 : 박명용, 글벗사, 1992

    카프시전집 Ⅰ․Ⅱ : 김성윤 편, 시대평론사, 1988

    카프대표소설선 Ⅰ․Ⅱ : 김성수 편, 사계절, 1988

    카프문학운동연구 : 역사문제연구소 문학사연구모임 편, 역사비평사, 1989

    카프비평자료총서 Ⅰ- Ⅶ : 임규찬․한기형 편, 태학사, 1989

    카프비평의 이해 : 김재용, 풀빛, 1989

    카프시대에 대한 회고와 문학사 : 임규찬․한기형 공저, 태학사, 1989

    카프 해소 비해소파의 대립과 해방 후의 문학운동 〈역사비평〉 : 김재용, 역사비평사, 1988. 여름호

    카프 해소 비해소파를 분리하는 김재용에 반박한다 〈역사비평〉 : 임규찬, 역사비평사, 1988. 겨울호

     

    -신경향파문학

    한국프로문학비평연구 : 김시태, 아세아문화사, 1978

    1920․30년대 한국경향소설 〈현대문학연구〉 70 : 서경석, 서울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연구회, 1987

    1920․30년대 한국경향시의 서사지향성 연구 〈현대문학연구〉 81 : 정재찬, 서울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연구회, 1987

    1930년대 한국리얼리즘론 연구 : 최유찬,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6

    신경향파 비평에 나타난 생활문학의 변천과정 〈현대문학연구〉 37 : 홍정선, 서울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연구회, 1981

    프롤레타리아문학의 한국적 수용양상 〈근대한국문학연구〉 : 김윤식, 일지사, 1973

     

    -프롤레타리아문학

    한국현대문학사 : 권영민, 민음가, 1993

    카프문학운동연구 : 역사문제연구소 문학사연구모임, 역사비평사, 1989

    한국프로문학비평연구 : 김시태, 아세아문화사, 1978

    1930년대 한국리얼리즘론 연구 : 최유찬,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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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작성한 카프 참고 자료.

    군 입대 전이니 벌써 도대체 몇 년 전 자료인지, 원...


    어째든 이태준 발표를 맡은 덕분에 일제강점기 문학사는 꿰뚫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 정권이 계속되면 카프도 공부 못하게 되는거 아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