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중심의 국어교육관
이삼형,『국어교육학과 사고』
-국어교육의 내용
Ⅰ. 언어적 사고의 본질과 국어교육
사고는 언어 및 언어문화 지식과 사용 전략을 바탕으로 하면서, 지식이나 경험과 관련하여 크게 인지적 사고, 정의적 사고, 상위인지의 네 가지가 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언어적 사고력의 구조를 바탕으로 사고력 중심의 국어과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이 나아 가야할 것이다.
첫째, 언어 발달과 사고력 발달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들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고려 없이는 국어 능력의 발달을 기하기 어렵다. 둘째, 인지 중심적 사고와 정의 중심적 사고의 통합성을 구현해야 한다. 사실상 두 영역 사이에는 경향성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인 차이를 찾기는 어렵다. 셋째, 심층적인 의미 구성 중심의 국어교육관이 구현되어야 한다. 의미 구성은 언어 이해와 표현의 바탕이 될 뿐 아니라 논리, 비판, 창의 등 제반 사고 활동의 바탕이 된다. 학습자가 국어를 매개로 하여 대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변형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은 자기만의 의미를 구성해 가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그를 바탕으로 국어 이해와 표현의 구체적인 기법을 구사할 때 비로소 능동적인 국어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어교육의 내용은 문화적인 맥락 아래 한편으로 사고력을, 다른 한편으로 텍스트 중심의 언어능력을 신장하도록 해야 한다.
Ⅱ. 사고중심 국어교육의 내용
1. 이해
1) 이해의 개념
국어교육에서 ‘표현과 이해’라고 할 때의 ‘이해’는 understanding이 아니라 comprehension (the ability to understanding)의 의미로 사용된 것인데, 이는 언어 기호나 그 결합체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는 능동적인 사고 과정을 말한다.
2) 이해의 요인
이해의 요인은 크게 언어 차원, 심리 차원, 사회 ․ 문화 차원의 셋으로 나뉜다. 언어 차원은 텍스트의 성격과 관련되는 요인으로 구조화 정도, 명료성 등과 관련된다. 심리 차원은 이해의 주체와 관련되는 요인으로 독자나 청자의 경험, 배경 지식, 사고 경향, 가치관, 이해 능력 등이다. 사회 ․ 문화적 차원은 소통 참여자 간의 관계, 기존 텍스트와의 관계(상호텍스트성), 사회 공동체의 가치관, 문화 등 맥락과 관련된 요소를 말한다.
3) 이해 능력의 발달 단계
이해 능력을 구성하는 요인들은 읽기 능력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읽기 능력의 발달 단계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크게 ‘읽기 전 단계(문자를 깨치기 이전의 단계), 소리 읽기 단계(글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단계), 내용 읽기 단계(내용에 초점, 음독<묵독), 독립적 읽기 단계(지식인들의 읽기)’로 나눈다. 학습자들의 특성에 따라 시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특정 단계를 뛰어넘고 지나갈 수는 없다.
4) 이해 이론과 모형
텍스트 중심 이론 모형(상향식 모형)은 텍스트가 이해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이론으로써 ‘아래에서 위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읽기란 글의 내용이 그대로 독자의 머릿속으로 옮겨지는 과정으로 본다. 독자 중심 이론과 모형(하향식, 상호작용 모형)은 글 자체보다는 글의 의미에 대한 독자의 적극적인 가정이나 추측을 강조하며, 주어진 글은 그 역할이 제한된다. 사회․문화 중심 이해 이론은 글의 의미는 개인 독자가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2. 표현
1) 표현의 개념
표현이란 새로운 의미 구성물을 생산해 내는 정신 활동으로서 과정으로서의 표현, 즉 생각이나 의견, 감정 따위를 드러내거나 전달하는 과정을 뜻한다. 국어교육에서의 표현은 언어, 그 중에서도 한국어를 통한 표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하기와 문자언어를 통한 쓰기 두 가지 양상을 지니게 된다. 표현은 표현하고자 하는 심리 내용을 관습화되어 있는 언어기호의 형식을 통해 음성이나 문자로 실체화한 것만이 진정한 표현에 해당한다. 한 편의 글을 쓸 때 필자는 화제와 독자에 대해 생각하고, 참고 자료를 찾고, 글감을 선택․정리하고, 관련 요인들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등 점차 글의 의미를 구체화해 나간다. 이것이 표현을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표현의 핵심은 ‘전달’이라기보다 오히려 의미의 ‘구성’이라고 하겠다.
2) 표현의 요인
표현에 관여하는 요인은 크게 언어 요인, 심리 요인, 사회․문화 요인의 세 가지이다. 먼저 의미 전달의 매체인 언어가 구어인가 문어인가에 따라 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 문어는 전달자와 수용자가 맥락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표현이 정제되고 분명해야 하며, 텍스트 그 자체로 의미가 완결되어야 한다. 반면 구어는 상황 맥락을 공유하기 때문에 반복과 같은 잉여적인 표현(redundancy)이나 필요한 내용이 누락된 불완전한 표현도 용인될 수 있다. 표현의 내용이나 방법을 결정하는데 관여하는 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표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수용자의 특성이나 사회적인 가치를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체는 표현하는 사람의 심리이다. 따라서 표현하는 사람의 심리 혹은 사고는 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마지막 사회․문화적 요인은 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맥락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표현을 하는 상황의 수용자가 누구인가, 현재 어떤 문제 상황에 놓여 있는가, 해당 사회 전체의 이데올로기나 가치관, 문화적 배경 등과 관련되는 것으로 표현의 내용과 방법을 결정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작용을 한다.
3) 표현 능력의 발달 단계
쓰기 능력은 대체로 ‘단순 연상적 글쓰기→언어 수행적 글쓰기→의사소통적 글쓰기→통합적 글쓰기→인식적 글쓰기’의 단계를 거치며 발달한다. 기존의 글쓰기 교육은 주로 언어 수행적 작문 단계에 도달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나 최근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글쓰기의 의사소통적 성격을 부각하고,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를 강조한 것은 의사소통적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사고로 시작해서 사고로 끝나며, 글쓰기 능력의 발달 역시 사고로 시작해서 사고로 끝난다. 글쓰기 능력의 발달은 단순 연상적 사고로 글을 쓰는 데에서 출발하여 인식적이고 반성적인 사고로 글을 쓰는 것으로 종결된다.
3. 인지 중심 사고와 정의 중심 사고
1) 인지/정의 중심 사고의 통합성과 교육방향
인지 중심적 사고란 논리적ㆍ개념적 성격이 강한,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고라는 말을 할 때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 정의 중심적 사고란 주체자의 인식에 따라 어떤 대상 속성에 대한 지각에 근거한 상상, 즉 정서적 요소가 개입된 사고를 말 한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의 범주가 이 두 가지로 명확하게 나누어진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인간의 사고는 한 가지 사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범주가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텍스트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에서도 인지 중심 사고와 정의 중심 사고는 뗄 수 없는 관계이며 통합적(혹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고이며 국어교육 또한 이들 두 사고의 개별성과 통합성을 염두에 두고 실시되어야 한다.
2) 인지 중심 사고에서 이해ㆍ표현 교육
표현과 이해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사고방식이다. 우선 이들은 ‘의미 구성’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수행하며, 언어 요인, 사회ㆍ문화적 요인을 공유한다. 그러므로 이해와 표현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활동 범주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표현과 이해의 과정을 토대로 사고 활동은 ‘명료화하기-텍스트는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가’, ‘상세화하기-화자는 왜 이런 글을 썼는가, 무슨 뜻인가’, ‘객관화하기-글의 내용이 합리적이고 타당한가’, ‘주체화하기-텍스트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가’의 네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객관화하기와 주체화하기는 정의 중심 사고와 관련이 깊은 부분이다.
3) 정의 중심 사고에서 이해ㆍ표현 교육
흔히 문학으로 대표되는 정의적 텍스트를 읽는 이유는 감동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정의적 텍스트를 읽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에 담겨 있는 사상과 감정을 통해 삶에 관한 깨달음과 즐거움을 체득하기 위해 시행된다. 깨달음은 일반적으로 독자의 인지적 능력에 의존하는 바가 크고 즐거움은 독자의 정의적 성향이 개입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다. 정의적 텍스트를 읽을 때에도 인지적 사고와 정의적 사고는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정의적 사고 교수-학습 활동이란 학습자가 정의적 텍스트 작품을 읽고 일정한 반응을 일으키기까지 일어나는 제반 활동을 가리킨다. 이러한 정의 중심적 사고의 구조는 ‘알기-텍스트를 통해 삶의 이치를 깨달음’, ‘따지기-텍스트의 타당성이나 합리성을 분별’, ‘느끼기-영혼의 울림을 얻게 되는 토대’, ‘즐기기-텍스트에 대한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향유’로 정리할 수 있다.
Ⅲ. 사고중심 국어교육의 내용이 국어교육에 가지는 의의
종래의 국어교육관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진다. 그 첫 번째는 기능중심 국어교육관으로써 여기에서는 언어사용의 기능을 기르는 데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다. 두 번째는 지식 중심 국어교육관으로 국어과 교육의 오랜 전통인 강독식 수업과 독본형 수업에서 유래하는 바가 크다. 이 두 국어교육관은 분명 그 장점도 있으나 각각, 실질적으로 벌어지는 국어생활과 유리되어 있으며 지식 자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 한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다. 소위 언어교육과 문학교육의 학문적 쟁점이 국어교육학의 학문적 위상을 발전시켜 왔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그 결실의 하나로서 국어교육을 언어교육과 문학교육이 두 축이 아니라 하나의 축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우리는 사고중심의 국어교육관을 통해 국어교육의 본질이 의사소통에만 그치지 않고 사고력 증진이라는 사실에 합의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국어교육학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