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시세계
서정주의 시세계
1. 총론
서정주는 근․현대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큰 대접을 받고 있는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800여편의 시를 쓰면서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손색이 없는 시를 쓴 그의 기량을 높이 산 것이라 하겠다. 자신의 시 세계를 어느 한 곳에 고착시키지 않고 삶의 경험을 토대로 계속적인 변화를 추구한 그의 시는, 우리 근․현대문학사에서 동시대의 시인들에게 그 어떤 시인보다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1942년에 다츠시로 시즈오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한 후 친일문학작품들을 연달아 발표한다. 1942년에서 1944년까지 그가 쓴 주요 친일 작품을 살펴보면 <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최체부의 군속지망> <헌시> <보도행> <오장 마쓰이 송가> 이외 다수이다. 미당의 당시 문단 지위나 연배로 보아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많은 양이며 그의 사후 2002년 2월 28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 의 자체조사를 통한 ‘일제 하 친일 반민족행위자 1차 명단’에 오르는 불명예의 원인이 된다. 이것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을 찬양한 일에 적극 참여한 일과 함께 그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과오가 되었다.
광복 후에는 주저 없이 우익노선을 선택해 이승만 정권에 충성을 다한다. 당시 문단의 주류였던 좌익에 비해 여러 가지로 열세에 있던 우익 문학진영을 이끌며, 1946년 4월 ‘조선청년문학가협회’ 의 주축 회원이 된다. 이후 이 단체가 확대 개편된 ‘한국 문학가 협회’에서 시가 분과 위원장을 맡는 등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한다. 이 시기에 미당은 문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작품들을 연달아 발표하였으나 광복, 한국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등의 격동의 사회에서 기회주의적 처세술로 일관, 후일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이승만 정권에 적극 협력하여 1948년 초대 문교부 예술과장을 역임하고 훗날, 이승만의 전기도 쓰게된다. 한편 사회활동도 활발히 하여 조선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를 거쳐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수 (1959 ~ 1979)를 지낸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 종신 명예교수가 되었다. 1971년 현대시인협회 회장, 1972년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등을 역임하였다.
2. 서정주 시의 결핍의식과 여성 지향의식 - <신부>를 중심으로 1
한 편의 시에 나타난 시적 상상력의 결과는 시인의 의식과 무의식에 모두 관계된다고 본다면 서정주 시에 나타난 상상력의 근거는 결핍에 있다. 따라서 결핍은 그의 의식체계를 지배해 온 억압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결핍의 대상인 ‘여자’의 변용과정을 성애의 대상, 구원의 대상, 초월의 대상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초기 시에 나타난 ‘가시내’의 존재에 주목하는 이유는 유년기를 재현해 낸 작품 속에 그 기억을 버리고 그 자체가 상상력의 원형이 되기 때문이다. 성애의 대상인 ‘가시내’는 육체적으로 미성숙한 소녀들이다. 육체적 관계가 불가능한 소녀들을 욕망한다는 사실만으로 시적 주체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후 서정주가 추구하는 시세계는 죄의식으로부터의 구원이다. 구원의 대상으로 나타난 누님의 존재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통해 욕망으로 소진되었던 육체의 회복기를 가지게 된다. 구원을 위해 초월적 세계에 눈을 뜬 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역사적 인물이나 설화속의 주인공들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이거나 설화적인 인물들이 초월적 존재로 확대되면서 서정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영원사상이나 초월사상에 바탕을 마련하게 되지만 결국 인간 세계를 떠날 수 없는 시인의 좌절감은 고향 ‘질마재’에 안착하며 위안 받게 된다.
여기서 <신부>를 서정주가 ‘질마재’에서 살았던 유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라고 보는 것은 시간이나 공간, 시적 주체가 질마재 마을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부’는 ‘가시내’의 변용으로 본다. 왜냐하면 원초적 이미지인 ‘가시내’가 억압에 의한 결핍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으로 변용되어 가다가 ‘신부’라는 과정을 거쳐 더 이상 변용이 필요 없는 ‘어머니’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초의 결핍을 겪는 것은 모체로 부터의 분리이며 그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시인은 ‘신부’라는 공간을 설정해 둔 것이다. 그러나 ‘가시내’에서 ‘어머니’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첫날 밤 의식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둠으로써 이후의 시들에서도 서정주의 결핍이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신부’를 통해 결핍을 해소하고 치유할 수 있는 모성적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기퍼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않는다는 外할아버지의 숯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나 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詩의 이슬에는 몇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껴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이며 나는 왔다 |
1연에서는 서정주의 상실과 굴욕 의식을 드러내 주고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1연을 보면 실제 서정주의 아버지 서광한은 농감으로서 위로는 지주에게 잘 보여야 하고 아래로는 농군들을 다스려야 하는 중간적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위치는 자신에게 있어 미미한 존재로 비쳐지고, 서정주의 의식세계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인해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에서 볼 수 있듯이 서정주의 시에서는 모성 편향성이 주로 나타나게 된다.
또한 서정주에게 있어서의 부의 부재는 서정주 개인의 정신적 뿌리의 상실을 뜻하는 동시에 국가 상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중적 상실은 결핍과 열등감을 동반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단절의식과 소외의식으로 이뤄진다. ‘애비는 종이었다’에서 화자인 ‘나’는 종의 자식이며, 이는 신분적 갈등과 열등감으로 자신의 운명적인 업고를 선험적인 예지로 통찰해 버린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아래 있던 우리들은 모두 일제의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이 일제 때 발표된 것이고, 그런 시적 표현이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서 보다 포괄적이고 넓은 해석을 해야만 그 의미가 분명해지리라 여겨진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라는 시행을 통해 젊었던 문학 청년적, 육정적 방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23년 동안 시인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앞으로 시인의 삶을 예견해 볼 수도 있는 구절이다. 여기서 바람은 어느 한 곳에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없고, 항상 어디론가 떠나야하는 속성을 통해 훗날 서정주의 유랑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에서 “세상”은 그 당시 현실로 비추어 볼 때, 조선 식민지현실로 어두운 시대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올바르지 못한 현실, 즉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현실이기에 화자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지식인으로서 적극적으로 현실을 타파하지 못하는 시인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다. “죄인”과 “천치”라는 시어를 통해 그러한 지식인의 갈등의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에서는 개인적인 괴로움과 역사의 시련이 겹친 삶을 돌아보면서 그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나 아픔을 뉘우침 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r그러한 삶의 시련과 고통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더욱 굳세게 일어나도록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 힘은 찬란히 트여 오는 아침에 그의 이마에 얹힌 시의 이슬로 나타난다.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는 시의 이슬이란 곧 괴로운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의 열매이다. 그리고 마지막 연의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에서혓바닥 늘어뜨리고 돌아다니는 수캐처럼, 스물 세 살 밖에 안 된 젊은이는 심한 자의식이라는 병에 시달린다. 이는 결핍과 열등의식을 드러내는 시인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한다. 개는 주인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그러나 시대의 파수꾼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때, “병든 수캐”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죄인 의식과 불구의식이 싹튼다.
이러한 자화상적인 시쓰기와 더불어 서정주 시에서 주목할 점은 그의 생명탐구 경향이다. 서정주에게 있어 ‘생명’은 ‘근원적 삶’ 또는 ‘근원적 의식’과 가치를 뜻한다. 이는 끝없는 동경의 원동력인 동시에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한계와 그 유한성을 향한 도전이 품는 인간 조건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절대 허무, 즉 죽음 앞의 현실을 초월하는 존재론적이고 근원적인 생의 문제인 운명과 본능, 감성으로 충일된 반이성적이고 반문명적인 원시주의의 세계를 서정주는 초기 시에서 구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명 탐구란 인간성 탐구이며 인간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내포하고 있는 죽음 환상은 서정주의 시적 정서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3 또한 서정주 시에 나오는 죽음환상은 시 곳곳에서 그 죽음의 모습 또한 다양하게 변하여 나타나고 있다.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새이 길이 있어 -「대낮」부분 |
「대낮」은 서정주의 초기 시 특징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시로 이 시에서도 죽음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 위의 부분을 보면 ‘죽는다’라는 말을 통해서 죽음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표출 시키고 있다. 붉은 꽃밭이라는 시어는 마치 양귀비 꽃밭을 연상시키는데 양귀비는 마약의 일종으로 강렬한 도취상태로까지 그 이미지를 연결시킨다. 그렇기에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 상태가 되는데 이곳에서 ‘자는 듯’이란 말은 ‘편안히’ 라는 의미가 첨가되면서 여기서 느껴지는 죽음은 편안한 죽음, 도취 상태에 빠진 황홀한 죽음을 나타내고 있다.
멀리 멀리 幽暗(유암)의 그늘, 외임은 다만 수상한 呪符(주부) 피빛 저승의 무거운물결이 그의쭉지를 다적시어도 감지 못하는 눈은 하눌로, 부흥...부흥...부흥아 너는 - 「부흥이」부분 |
… 내피는 익는가. 능금같이 익는가. 능금같이 익어서는 떠러지는가 -「斷片(단편) 」부분 |
시「부흥이」에서는 ‘저승’이라는 죽음과 관련된 시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해서 죽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斷片(단편)」에서는 죽음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시어는 없지만 죽음을 상징하는 시어 ‘내 피’, ‘능금같이 익어서는 떠러지는가’를 통해서 죽음의 이미지를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내포하고 있는 죽음 환상은 서정주의 시적 정서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서정주는 어린 시절 심한 학질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몸소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타관으로 벌이 나가고 어머니와 할머니도 밭에 나가고 빈집에 다섯 살짜리’인 서정주가 혼자 있는 어린 시절 경험을 많이 하면서 아무도 없이 혼자 남겨졌다는 것이 서정주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이것이 서정주에게 깊숙이 각인 된 것은 그 속에 죽음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이미지는 서정주 시의 또 다른 특징인 성적관능, 육체성과 결부되어 최고조에 이른 죽음 환상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성애의 주체로 적극 가담하거나, 시적 대상에다 그러한 감정을 이입시킴으로서 공포를 극복해 가고, 더 나아가 생명, 인간 삶의 의미를 탐구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성적 관능, 즉 말초적 감각이야 말로 “나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가장 확실하게 전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이 삶의 단절로서 존재의 불연속성을 의미한다면 삶은 존재의 연속성을 의미하는데 성적 관능을 통한 연속성의 확인은 단절된 개체로서의 존재가 또 다른 개체를 만나 몸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것이 죽음 환상을 넘어서는 연속성으로서의 접근으로 다가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시가 생명탐구로 불리게 된 그 이면에는 죽음 환상을 극복하고 성적관능에 대한 탐닉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
- 이 내용은 박용래, 「서정주 시에 나타난 결핍과 그 변용 - ‘가시내’에서 ‘신부’까지」를 요약한 것임. 이러한 서정주 시의 여성성을 분석한 사례는 오탁번(비유와 모성(母性)심상을 중심으로), 김주연(서정주 시의 여성 인물을 섹스, 여성, 설화로 구분), 신범순(영원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성), 정효구(가장 대표적인 논의. 관능의 대상인 여성, 일상적 현실 속의 여성, 역사와 전설의 여성, 신화 혹은 자연이 된 여성)이 있으며 정효구의 논의를 받아들여 차호일이 초기 현실 일탈의 관능적 여인상, 중기 현실 순응의 전통적 여인상, 후기 현실 초월의 신화적 여인상으로 구분한 것이 현재엔 가장 대표적이다. 박용래의 논의도 결국엔 용어만 다를 뿐, 차호일의 연구 결과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본문으로]
- 김정신, 『서정주 시정신』, 국학자료원, 2002. [본문으로]
- 김점용, 『미당 서정주 시적 환상과 미의식』, 국학자료원, 2003. [본문으로]
- 이런 성적관능에 대한 탐닉은 위의 "2. 서정주 시의 결핍의식과 여성 지향의식"을 참조할 것. 약술하자면, 서정주의 초기시에서는 여성의 성기 혹은 성애를 묘사한 부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이러한 성적 탐닉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관능 의식은 결국 죄의식과 결부된다. 서정주의 중기시 이후부터는 이러한 성적 탐닉에서 서서히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중기시의 대표작은 <국화 옆에서>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