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상 읽기

안내상과 정조의 만남

by 영혼의환 2010. 4. 29.


<한성별곡-正 제 6회> #29 ~ #31

29. 영춘헌, 낮 

대여섯평 남짓 사방이 막힌 육면체 천막 틈새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칼을 차고 경호중인 이재한. 
천을 들추고 코와 입을 가린 심의원이 나와 끄덕인다. 
속적삼 차림으로 힘겹게 좌정한 임금. 숨이 턱 막히는 자욱한 연기.
물 대야를 든 이나영과 최의원 임금 뒤로 가 피 고름에 검붉게 물든 적삼을 풀어내고 등을 살핀다. 

임   금 : 농(고름)이 나왔는가
최의원 : 예, 전하. 기력을 보하실 약재를 준비하겠습니다. (나간다)
임   금 : 이곳은 내 생부께서 태어나신 곳. 어린 시절 생부의 복수를 다짐하며 수도 없이 찾았던 곳이다. 
이나영 : (천으로 고름을 천천히 닦아낸다)
임   금 : 굳이 이곳에서 치료 받겠다 고집한 이유는... 새 생명이 태어나듯... 
            새로운 조선을 이끌 강건한 힘을 되찾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나영 : (대야에 헹군다)
임   금 : 아귀처럼 이 복마전에서 살아남으려는 이유는, 
            고통 받는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조선을 만들겠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다. 
이나영 : (우뚝 멈춰서는 손) 
임   금 : 나의 간절한 소망은 그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때문에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 
이나영 : (임금의 등을 쏘아보며 떨리는 눈동자) 

삽입컷) #6-5씬. 박상규 : 임금은 낭자를 알고 계십니다. 


30. 조상궁 집무실, 낮 

주위를 살피며 뒤지던 서내관, 서찰을 발견해 확인하곤 품안에 넣는다. 
문소리에 놀라 돌아보면 칼을 든 장수1 들어온다. 안도하며 서찰 꺼내 보여준다. 
장수1 끄덕이곤 별안간 차갑게 웃으며 칼을 꺼내 휘두른다. 


31. 영춘헌, 낮

임   금 : 허나 당쟁은 줄지 않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 바쁘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은 죽어나가고...
          내가 꿈꾸는 새로운 조선은 저만치서 다가오지 않는다. 
이나영 : (마음이 아프다. 천을 헹구는데 손이 떨린다) 
임  금 : 나의 신념이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이 안타까운 희생을 키우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이나영 : (넋나간 얼굴로 임금의 등을 본다.) 
임   금 : 나영아!
이나영 : (흠칫 놀란다)
임   금 : 너라면 어찌하겠느냐...
이나영 : ! 
심의원 : 전하. 이제 밖으로 나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
지금은 비록 불륜 전문 배우처럼 인식되어 버렸지만, 어떤 역할이든 안정적이면서도 몰입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안내상.

특히나 한성별곡 正에서 죽기 전 나영을 향해 이야기하던 저 대사는 안내상이기에 소화 가능한 것이었다.

자칫했으면 신파로 빠질 수도 있었고, 혼자 지껄이는 어색한 독백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을
자아와 세계의 대결에서 지쳐가는 왕의 고뇌로 소화해 냈다.

그야말로 연극에서 시작해 단막극, 영화의 조연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은 "배우"이기에 가능했던 연기!

안내상이 연기했던 정조야 말로 가장 정조다운 모습을 지닌 정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