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상 읽기

[무한도전] 길, 무도 월드의 첫 이정표가 되다

by 영혼의환 2009. 6. 28.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있는 무한도전의 실상은 캐릭터 버라이어티다. 이것은 비단 무한도전만의 이야긴 아니다. 지금 국내에서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이야기하는 모든 프로그램의 실상은 출연진의 캐릭터를 활용한 버라이어티 쇼다.1) 이것은 무한 도전이 처음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부터 시작된 진실이다. 하하와 정형돈이 실상은 어색한 사이라는 것이 폭로되고, 정형돈이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낯을 가린다는 사실을 무한도전 카메라가 드러내면서 이 캐릭터 리얼 버라이어티는 시작되었다. 그후 무한도전은 노홍철의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를 떠벌이에서 돌+아이, 사기꾼이란 캐릭터를, 하하의 떼쓰는 모습에서 그를 꼬마 석사로, 정준하에게 식신을, 박명수의 호통 개그에서 그에게 악마라는 이미지의 캐릭터들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캐릭터가 자리잡으면서 무한도전엔 대본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대본이 사라진 자리는 각자의 캐릭터를 활용한 시놉시스가 대신했다. 제작진은 각자의 출연진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의 큰 틀 만을 제시하고, 출연자들은 그 틀 안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이 인기를 끌며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와 유사한 수많은 캐릭터 버라이어티가 나타났다.2)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의 아성은 타 프로가 넘볼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그들은 완벽하게 자리잡은 캐릭터를 통해 여러 도전 과제들을 수행하며 아직까지도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상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캐릭터가 공고해 지면서 그 반대급부의 문제도 생겼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여섯명의 캐릭터가 견고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버려 그들 사이에 다른 캐릭터가 끼어들 자리가 없어져 버렸단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결과, 하하의 군 입대 이후 제 7의 멤버 전진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편에서 맹 활약을 평치며 화려하게 등장한, 아이돌계의 전설 신화의 멤버인 그였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무한도전 멤버들 사이에서 그는 그저 명확한 캐릭터 없는 주변인일 따름이었다. 전진은 잘 생겼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열심히 하지만, 그의 그런 캐릭터는 루저들의 집합인 무도엔 맞지 않았다. 그 결과, 격렬한 신체활동을 동반하는 에어로빅, 봅슬레이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그는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는다. 무한도전 내에서 전진은 이제 명확한 캐릭터가 없는 방송인이 무한도전 사이에 끼어들면 어떻게 되는 지의 산 증인이 되어 버리는 수모를 겪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처럼 전진이 캐릭터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지 1. 무도 팬들은 다시 걱정스런 소식을 들어야 했다. 바로 길이 제 8의 멤버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전진도 무한도전 내에서 명확히 자리잡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팬들에겐 그야 말로 깜짝 뉴스였다. 왜냐하면, 대중에게 인식된 길의 캐릭터는 생소함, 혹은 비호감이었다. 그는 과연 그런 캐릭터 만으로 무한도전 멤버들의 연결고리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것이 팬들이 길의 제 8의 멤버 소식을 들었을 때 했던 고민의 핵심이었다. 무도 등장 초기 길은 명확한 캐릭터가 없었다. 그는 재미있는 상황과 개그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그것은 캐릭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에게 얹혀가는 느낌이 강했다. 그는 자신을 박명수와 엮어가려는 듯한 모습을 많이 연출하고, 비호감 이미지를 굳히는 듯한 개그를 선보였다. 그도 결국 전진처럼 초기에 반짝 재미를 보여주고 끝없는 부진의 늪으로 빠지는 것은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애초에 그를 멤버로 인정해선 안 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들이 무도 팬들 사이에서 일어났다.4)

 

이런 걱정은 비단 팬들만이 아니라, 제작진도 같았나보다. 제작진은 아직 비호감 외엔 별다른 캐릭터가 없는 길을 위해 새로운 방식을 궁 밀리어네어특집에서 그에게 제공했다. ‘궁 밀리어네어에서 멤버들이 이 궁, 저 궁 찾아 다닐 때, 길은 개인 카메라도 없이 일종의 NPC(Non Player Character) 역할을 수행했다. 제작진은 그를 억지로 멤버들 사이에서 함께하게 하는 대신, 그를 제작진의 대리자로 내세워 멤버들의 서울 고궁 구경의 안내자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길은 실제로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카메라도 없이 이 궁, 저 궁 옮겨 다니며 때로는 안내자로, 대로는 시청자들의 대변인으로 멤버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하면서 길은 멤버들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길과 제작진은 그에게 아직 시청자와 멤버들 모두에게 명확한 캐릭터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궁 밀리어네어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길에게 부여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런 새로운 캐릭터의 창조는 이번 여드름 브레이크에서 너무나 적절하게 활용되었다. 그는 이번 특집에서 지난 궁 밀리어네어처럼- 처음엔 탈옥수들을 돕는 NPC의 역할로 등장했다. 멤버들은 궁 밍리어네어의 잔상이 남아서인지, 모두들 그런 길을 신뢰했다. 탈옥수들은 길이 자신들의 도주를 돕는 자라고 생각했고, 형사팀은 길이 탈옥수와 자신들 간의 간격을 조절하는 제작진이 내세운- NPC라고 여겼다. 그리고 제작진과 길은 이를 이용해 희대의 시나리오를 완성시켰다. 바로 길이 그가 말하던- ‘큰 형님이며 돈가방을 노리는 자들 중 하나라는 반전을! 이 반전은 순전히 길이 연기한 새로운 형식의 캐릭터 덕분에 가능한, 정말 리얼한 연출이었다. 그가 아닌 다른 기존 멤버 중 하나가 그의 역할을 맡았다면, 다른 멤버들은 의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길이었기에, 이전에 그가 연기한 캐릭터 때문에 모두가 길에게 속을 수 있었다. 결국 이번 여드름 브레이크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기존 여섯 멤버가 아니라, 실상은 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사실을 볼 때, 이제는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길은 무한도전 내에서 완전 새로운 캐릭터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그의 캐릭터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첩자? 중재인? 아니면 그냥 이간길? 아직은 그 명칭을 뭐라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또한 다른 멤버들과 이제 계속 관계를 맺으면서 그 캐릭터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이 어딘지 모르기에 지금의 그에게 이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김태호 PD가 꿈꾸고 있다는 무도월드는 길을 통해서 이제 성공 가능성을 열었다. 멤버들의 너무 공고한 결속력 때문에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던 이 꿈은 이제 길을 통해 해답의 실마릴 찾았다. 이제 길이 성공을 넘어 완전히 정착한다면, 그는 무한도전의 새로운 지향점이 될 수도 있다. 마치, 하하와 정형돈이 캐릭터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포맷을 창조한 것 처럼. 우리는 어쩌면 지금, 무한도전의 새로운 이정표를 목격한 것일지도 모른다.



--------------각주 해설

 

1)    이하부턴 우리가 흔히 리얼 버라이어티라 부르는 용어를 캐릭터 버라이어티로 대체해서 부르겠다.

2)    <패밀리가 떴다>의 무리한 대본 설정은 리얼 버라이어티라 부르는 것이 실은 캐릭터 버라이어티라는 사실의 반증이다. 후발 주자인 패떴이 선두 주자인 무도와 일박을 따라잡기 위해선 시청자들에게 그들 출연진의 캐릭터를 머릿속에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가 패떴 대본 파동이었지만, 그 대본 덕에 패떴은 명확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20% 이상의 시청률을 획득할 수 있었다.

3)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전진 영입 초기에 두 대형 프로젝트가 시도되었단 사실이 전진 개인에겐 안타깝다. 그때 그 프로젝트 대신 무도 특유의 소소한 토크들로 전진을 파헤쳤다면,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에어로빅과 봅슬레이는 전진의 존재 덕분에 도전의 성공 가능성이 커졌었지만, 그 프로젝트의 목표에 집중하는 사이 전진의 캐릭터를 설정할 시간이 사라졌다.

4)    길에 대한 팬들의 우려는 무한도전 공식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