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시세계
1. 총론
이육사는 몇 편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작품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타 시들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그의 치열한 삶 때문이다. 삶은 시이다. 시 분석은 시인의 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육사의 시인 정신에 대한 논의 대상은 「절정」과 「교목」,「광야」,「꽃」,「청포도」이다. 그의 정신 세계가 다섯 편의 절창 속에 구현되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절정」의 하늘, 「교목」의 호수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한계 지점이다. 「절정」이나 「교목」은 하늘로의 초월, 호수로의 투신으로 미래에 대한 대안 대신 초월하게 된다. 「청포도」는 ‘손님’으로 미래에 대한 대안이 제시된다. 그의 신념이 비로소 여기에 처리되고 있다.
2. 「절정」
매운 계절의 챗죽에 갈겨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꾸러야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깜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보다.
작가와 텍스트 속의 시적 자아는 동일하다. 육사는 자신이 시를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행동으로 보고 있다. 그의 친우 신석초는 ‘그에게 있어서는 현실 참여와 시적 작위가 거의 일치되어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고 ‘작품 「절정」에서는 일제에 쫓기는 혁명가의 어쩔 수 없는 위기 상황을 아주 절묘하게 그려냈다.’고 했다.
‘강철 무지개’는 극한 상황에서의 탈출구이다. 여유, 황홀, 자유와 같은 정신적 경지로서의 탈출이다. 오로지 행동 밖에 없다던 이육사도 행동을 할 수 없는 경지에 이으러서는 정신적 탈출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행동이 있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한데 애초부터 그에겐 그것이 제거되어 있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파괴를 택하지 않고 초월이라는 창조 행위를 선택한 것이다.
과거의 선비들은 의로운 죽음을 선택했다. 죽음의 선택보다는 신념의 실현이 육사에게 더 절실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무지개라는 너른 공간으로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확고한 신념 때문에 가능하다.
확고한 신념이라도 미래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죽음이나 초월의 의미가 없다. 「절정」은 그에 대한 대안이 없다. 「절정」은 여기까지가 한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정’을 통해서 절망적인 죽음의 극한 상황을 강철 무지개로 초극의 정신적 통로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을 극복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절체절명의 과제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3. 「교목」
푸른 하늘에 다올드시
세월에 불타고 웃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어라
날근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이 꿈길에 혼자 설내이는
마음은 아예 위우침 안이리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춤내 湖水속 깊이 걲우러저
참아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시 시의 제목인 교목은 선비의 자세를 나타내는 표상임을 이해해야 한다. 바람은 외적 장애물이다. 의미가 없어졌을 때 선비들은 죽음으로써 자아를 구제하고자했다. 교목은 바로 그러한 선비 정신에 기인하고 있다. 육사는 목숨 보존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을 확인하고자 했다. 바람도 흔들 수 없는 단호한 결의를 역설적 인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도 하나의 행동이라고 했다. 시에는 시인의 의식이 투사되어 있다. 투쟁이 그의 시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1연은 외부의 압력, 2연은 세계와의 갈등, 3연은 내부의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 2연을 축으로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저항이 같은 부피로 대칭되고 있다. 외부 압력만큼 내부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갈등을 축으로 외부 압력을 내부 저항으로 떠받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쪽이 기울 수밖에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육사는 그것을 한 치도 용어하지 않았다. 그의 정신과 행위는 이렇게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교목」도 미래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4.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및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절박한 상황 앞에서「절정」에서는 강철 무지개로 초월,「교목」에서는 호수 속으로 투신하고 있다. 그것으로 끝이다. 육사는「청포도」,「광야」,「꽃」에서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광야」에서는 목놓아 부르고 「청포도」에서는 손님으로 찾아오고 「꽃」에서는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르기를 굳게 믿고 있다. 이것이 그의 신념 처리이다.
「절정」과「교목」에서는 그 어떤 대안도 설정되어 있지 않다. 육사에게 있어서의 땅은 삶의 공간이요 하늘과 호수는 죽음의 공간이다. 꿇어앉을 만한 땅이 없기에 하늘과 호수라는 정신 공간으로 초월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하늘로든 호수로든 갈 데는 그 길 밖에 없다는 점이다. 육사에겐 하늘이나 호수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극단의 자리이다. 그의 진술 ‘강철’과 ‘흔들지 못해라’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종적 결단의 자리이다. 그것이 전제가 되어야 무지개로 초월할 수 있고 호수로 꺼꾸러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절정」,「교목」은 선비 정신을 극명하게 그러낸 하나의 텍스트이다. 이제 시인은 새로운 탄생을 준비해야 한다. 부활로의 전환이다. 「절정」,「교목」은 기다림이나 미래에의 약속이 제거되어 있다.
「청포도」에서 찾아온 손님은 「절정」이나 「교목」에서 왜 하늘로 초월해야했고 왜 호수로 투신해야했는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청포도」에서 그러한 약속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하늘 및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지도 않았고 흰돛단배가 굽게 밀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5. 종합
육사의 신념은 미래에의 약속에 모든 것들이 귀결되어 있다. 「절정」과 함께 「교목」은 육사 자신의 생애를 집약, 선비 정신의 치열성과 강렬성을 형상화한 절명시이다. 그러나 미래에의 대안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압력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설정 외에 그 어떤 길도 찾을 수 없다. 이 두 텍스트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닌 신념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가라는 큰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청포도」에서는 바다가 가슴을 열고 돛단배가 밀려오면 손님은 고달픈 몸이지만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다. 청포를 입고 찾아온 손님은 간절한 기다림 끝에 얻어진 미래에의 약속이다. 손님은 물음에 대한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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